4월 30일, 이례적으로 더운 날씨였습니다. 아침 일찍 KTX를 타고 경주역에 도착하니 이시형 작가님이 직접 마중 나와 계셨습니다. 얼마 전 큰 트럭으로 차를 바꾸셨다고 했습니다. 흙이나 나무, 자재를 실어 나르는 일이 많아져 필요했다고 하셨는데, 그 말씀만으로도 어떤 삶의 무게와 리듬이 전해졌습니다. 점심 무렵에는 인근의 로컬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했고, 그렇게 차를 타고 승평요로 향했습니다.
요장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10년을 함께한 가마터를 허물고 새 가마를 짓고 있는 광경이었습니다. 아직 완성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했지만, 이미 그 형태만으로도 충분히 가마의 존재감을 풍겼습니다. 모든 과정을 혼자 손수 진행하고 있다고 들었을 때, 놀라움과 함께 묘한 친밀감이 들었습니다. 작은 것 하나에도 직접 손을 대고, 느리지만 묵묵히 쌓아가는 모습은 지금의 피터캣을 만들어가는 제 모습과도 닮아 있었기 때문입니다.
아틀리에 안으로 들어서자 작업 도구들이 벽과 바닥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. 아직 가마에 들어가기 전인 수많은 기물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, 그 풍경 자체가 이미 거대한 이야기 같았습니다. 아틀리에를 지나면 작가님이 생활하시고 손님을 맞이하시는 공간이 이어졌습니다. 문을 열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수많은 기물들에 압도되었는데, 그중에서도 가장 강렬하게 시선을 끈 것은 역시 달항아리였습니다. 조용하지만 웅장한 존재감이 있었습니다. 찻사발도 아름다웠지만 달항아리는 공간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.
차를 마시며 꽤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. 서로 살아온 과정을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친구처럼 주고받았고, 반평생을 각자 한 가지 길에 묵묵히 쏟아온 사람들이라서인지 일에 대한 철학을 공유하는 순간이 많았습니다. 공통점도, 차이도, 그 자체로 흥미로웠습니다.
그날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장면은 한쪽 구석, 바닥에 놓여 있던 큰 달항아리였습니다. 이미 다른 분이 구입한 작품이라고 했지만, 그분은 “조금 더 두고 싶다”며 작가님께 보관을 부탁했다고 합니다. 언젠가 시간을 내어 다시 찾으러 오겠다는 약속만 남기고 말입니다. 장작가마의 특성상 같은 기물을 두 번 만들 수 없으니, 마음을 강하게 끄는 순간이 오면 주저 없이 잡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.
승평요의 방식도 특별했습니다. 온라인 판매도, 클래스 운영도 없고, 오직 구전을 통해서만 이어지는 판매였습니다. 인스타그램 계정은 있지만 1년에 몇 차례 정도, 그것도 거의 작업 과정이나 완성품을 공개하지 않는 수준이었습니다. 다소 고집스러워 보일 수도 있겠지만, 그것은 자부심이고 철학이었습니다. 외부의 속도나 요구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리듬을 지켜내는 태도. 그 점이 오히려 피터캣과 닮아 있어 더 마음이 갔습니다.
작가님이 들려주신 작은 에피소드 하나가 있습니다. 승평요에 자주 오던 한 손님이 늘 같은 기물을 보고는 너무 좋아했지만, 가격 때문에 결국 사지 못하고 돌아가곤 했다고 합니다. 그 사정을 알게 된 작가님이 “할부처럼 천천히 하셔도 괜찮다”며 배려를 건네자, 그 손님은 결국 기물을 손에 넣었고, 진심으로 감사해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. 작품을 진심으로 알아봐 주는 이에게 작가도 뿌듯함을 느낍니다. 어쩌면 이런 순간이야말로 예술을 이어가게 하는 힘일 것입니다.
경주는 한국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도시입니다. 그 도시에서 묵묵히 자기 길을 지켜온 장인을 만났다는 사실은 제게도 큰 기쁨이었습니다. 그리고 이제는 그분과 함께 무언가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일을 하게 되었다는 점에서, 앞으로의 시간이 더 기대되었습니다.














